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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1-12 15:51 조회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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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 바닥 권리금이 순식간에 '無권리'로 시장에
권리금 회수 못하면 빚더미
"쓰던 집기 인수만이라도" 눈물

2020년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2020년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세종=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집기 인수 조건으로 바닥 권리금 8000만원짜리 상가를 무권리로 넘깁니다."

대구 동성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오모씨는 수개월째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자, 최근 폐점을 결심하고 가게를 내놨다. 8000만원이던 권리금을 5000만원, 3000만원까지 낮춰봤지만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철거비용이라도 아끼려 집기 인수만 조건으로 내걸었다. 오씨는 "더 좋은 상권은 권리금만 수억 원인데, 그대로 나가면 다 빚이 되는 셈"이라며 "깔고 앉은 권리금 때문에 이도저도 택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피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째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쉽사리 폐업을 결정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초기비용으로 쏟은 권리금이 꼽힌다. 권리금은 쉽게 말해 ‘자릿세’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임대차 계약과는 별개로 해당 영업용 건물과 관련한 ‘재산적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 여기에는 영업시설, 비품 등 유형물뿐 아니라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그리고 결정적으로 ‘점포의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무형의 것이 포함된다.

문제는 법(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3)에서는 그 성격만 명시할 뿐 보호하지는 않는 투자비용이라는 점이다. 명동, 종로, 이태원, 홍대입구 등 서울 내에서도 금싸라기로 꼽히는 관광지 및 유명 상권에서마저 코로나19 사태 이후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하모씨는 "가게를 열 때 권리금만 1억30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0원이라고 봐야 한다"며 "지금은 무권리에도 공실이 넘쳐난다"고 토로했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한모씨도 "한창 영업이 잘될 때는 상가 거래 브로커의 영업 전화도 많이 받았다"며 "이제 권리금 회수는커녕 인수자 찾기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수요와 공급을 기준으로 봐도 공급 과잉에 따른 권리금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KB부동산 보고서(상업용)’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상가 건축허가 면적은 3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19.2%, 착공 면적은 1.3% 증가했다. 보고서는 "자영업 경기 침체 등으로 임대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급까지 늘어 공실 증가와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파워볼

-1차 지명자 김태균 “캠프에서 ‘선수 같지도 않다’는 얘기 듣고 화장실에서 엄청 울었다”

-‘악바리’ 이정훈의 약속 “태균아, 너는 내가 책임진다. 우리 2군 가서 한번 죽어보자”

-“강석천 코치로부터 선배의 도리 배워. 포지션 경쟁자인 내게 많은 걸 가르쳐주신 분”

-“프로에서 세대교체는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선배들이 버티면서 이뤄지는 것”

-“지금처럼 전 경기 중계가 어딨나. 후배들이 야구인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화 이글스 시절의 김태균. 김태균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야구팬들은 다음 세대에게 김태균을 어떻게 설명할까. 과거 세대에게 ‘레전드’는 기억의 특권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엠스플뉴스]

야구공을 처음 손에 잡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올 시즌까지, 30년 야구 인생 내내 김태균은 쉼 없이 달려왔다.

김태균은 “나는 천재형 선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학교 훈련이 끝나고서 아버지와 함께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프로 입단 뒤에도 독하게 훈련해 데뷔 시즌 신인왕에 올랐다. 그리고 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300홈런·2000안타 우타자'로 KBO리그사에 이름을 남겼다.

“남들은 다 은퇴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던데, 난 다르다.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다.” 김태균은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자신했다. 늘 최선을 다했고, 능력 이상의 성적을 올렸고,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기에 아쉬움은 없다. 앞으로 펼쳐질 제2의 인생도 지금껏 해온 대로 김태균답게 헤쳐나갈 각오다.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김태균을 엠스플뉴스가 만나 인터뷰했다. 오랫동안 짊어진 짐을 내려놔서 그런지 표정은 밝았고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우리 한화’와 ‘우리 후배들’ 그리고 ‘한화 팬’이었다.

[1편]

논두렁 연습장, 옥상 배팅장…아버지의 열성이 김태균을 키웠다 [엠스플 레전드]에 이어

“저것도 선수냐” 비난에 받은 상처, ‘악바리표’ 맹훈련으로 치유받다


이정훈 전 한화 2군 감독. 입단 당시 상처받은 김태균을 다시 일어서게 도왔다(사진=엠스플뉴스)
은퇴 기자회견 때 가장 고마운 지도자로 세 명을 언급했다. 그가운데 이정훈 전 한화 2군 감독(현 한일장신대 인스트럭터)을 제일 먼저 언급한 이유가 뭔가.

내 프로 생활의 시작을 함께한 분이니까. 처음 1차 지명으로 프로 입단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아니, 엄청 못했다는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당시 경남 남해 마무리캠프 연습경기에서 30타석 넘게 섰는데 안타는 3개밖에 때리지 못했다. 아마 삼진을 스무 개 넘게 당했을 거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 얘기다.

내가 수비 연습하러 나가면, 옆에서 날 보고 비웃는 코치님도 있었다. 충격이었지. (잠시 침묵했다가) 선수가 못하면 코치가 가르쳐줘야 하는데 비웃다니,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더 서러운 일은 숙소에서 겪었다.

무슨.

남해 숙소가 조립식 건물이라 방음이 잘되지 않는다. 한방중에 다들 잠든 시간이라 조용한데, 옆방에서 몇몇 코치님이 말씀하시는 게 그대로 다 들렸다. ‘김태균 쟤 어쩌냐’ ‘1차 지명이라고 왔는데 선수 같지도 않아서 큰일이다’하는 얘길 듣는데, 너무 충격이었다. 그래도 나름 청소년대표도 하고, 고교 최고 타자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이런 소리까지 듣다니…화장실에 가서 한참 울었다. 눈물을 닦고서 방에 들어와 자는데 ‘두고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흐름상 이정훈 감독이 ‘짠’하고 등장할 타이밍인데.

마무리캠프 마지막 날, 훈련 끝난 뒤 샤워장에서 이정훈 감독님과 둘이 남아 샤워하고 있었다. 그때 이 감독님이 타격코치였다. 감독님이 갑자기 내 등짝을 ‘빡’ 때리면서 그러시더라. “야, 태균아. 너는 내가 책임진다. 나만 믿고 따라와. 우리 2군 가서 한번 죽어라 해보자.”

이 감독님 목소리가 자동으로 음성지원 되는 느낌이다.

당시 심적으로 너무 힘들 때였는데, 이 감독님 말씀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기댈 곳이 생긴 거니까. 그때부터 이 감독님이 나를 진짜 아들처럼 챙겨주셨다. 운동 끝난 뒤에도 남아서 티볼 띄워주시고, 배팅볼 던져주시고. 쉬는 날엔 밥까지 사주시고, 야구 얘기를 쉬지도 않고 계속하셨다. 원정 경기에 가서도 방에 불러 스윙 연습을 시키셨다. 나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든 분이다. 심지어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어도 전화해서 “냉큼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런.

이 감독님은 정말이지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살벌할 정도다. 물론 선수에 따라서는 그렇게 지도자가 열정적으로 다가오는 게 부담스럽거나 싫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됐다.

마무리캠프 때 ‘선수도 아니’란 소릴 듣던 선수가 데뷔 시즌 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정훈 감독과 맹훈련한 결과라고 봐도 될까.

이 감독님 덕분에 1군에 올라오는 시기가 빨라졌다. 모든 신인 선수가 다 그렇듯 나도 처음 프로 입단했을 땐 바로 주전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프로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2군에서 딱 3년만 미친 듯이 해보자고 다짐했다. 3년 뒤에는 반드시 1군에 올라온다는 생각으로, 이 감독님이 시키는 훈련은 하나도 뺴놓지 않고 다 했다. 배팅도 1천 개 치라고 하면 1천 개를 쳤다.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1군 진입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

어째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 입단 초기까지 내내 ‘스파르타식’ 지도자와 함께한 느낌이다(웃음).

그러게. 아마추어에서 힘들게 운동해서 프로까지 왔는데 한화에서도 이정훈 감독님을 만났지 뭔가. 개인적 생각으론 어릴 때는 훈련을 많이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본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 훈련량인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나이 어린 선수라면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물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스스로 풀어갈 능력이 생긴 뒤에는 크게 터치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강석천 코치님 보면서 ‘선배의 도리’ 배웠죠”

강석천, 김태균. 훌륭한 선배들의 발자취가 있기에 한화의 미래는 밝다(사진=한화, 엠스플뉴스)
2001년 4월 17일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20년 전인데 기억하나.

수원 현대전을 앞두고 1군으로 올라갔다. 당시 현대는 리그 최강팀이었다. 특히 김수경, 임선동 등 투수진이 막강했다. 그래도 한창 2군에서 잘하고 있을 때라, 자신은 있었다.

데뷔전에서 안타를 때리지 못했다.

첫 경기에선 볼넷 하나를 골라냈고, 다음날엔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3연전 끝나자마자 2군으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실망했나.

어차피 ‘3년’을 생각했으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다. 2군 내려가서 다시 열심히 훈련했다. 내심 ‘한번 주어진 기회를 못 잡았으니까, 다음번 기회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 싶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1군에 올라갈 일이 생겼다. 장종훈 선배님이 투구에 손가락을 맞아 당분간 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거다.

그렇게 다시 1군에 돌아와 5월 19일 삼성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당시 팀이 8회말 공격 전까지 0대 12,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었다. 투아웃 주자 없는 가운데 타석에 나갔는데 홈런을 쳤다. 그게 내 첫 안타이자 홈런이다. 그 뒤로 대타로 나갈 때마다 계속 안타를 쳤다. 어쩌다 찬스에 나가는 대타 카드 1순위가 됐다(웃음).

데뷔 첫 안타를 시작으로 1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전반기가 끝났을 때 41경기 타율 0.326에 5홈런 17타점으로 빼어난 성적이었다. 그 정도면 후반기 주전은 보장된 건데.

그거 아나?

뭔가.

전반기가 끝난 뒤에 2군으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니 왜?

통보받고 ‘아, 1군에 내 자리는 없는가 보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후반기 첫 경기를 하루 앞두고 다시 1군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후반기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47경기 타율 0.340에 15홈런 37타점으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것도 계기가 있었다. 후반기 세 번째 경기 삼성전이었을 거다(7월 26일). 팀이 9회말 공격 전까지 2대 4로 지고 있었다. 그러다 9회말 2사 1루에서 대타로 출전했다. 투수가 당시 삼성 마무리로 잘 나가던 김진웅 형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동점 홈런을 때려냈다. 그러고 연장전에 들어갔는데, 3루수 강석천 선배님이 이미 대타로 교체된 뒤였다. 3루수로 나갈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3루수로 교체 출전했다.

엄청 긴장됐겠다.

하필 내가 3루수로 나간 뒤 11회초 수비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점수를 내줬다(9실점). 결국 기껏 동점 만들어 놓고 연장전 끝에 큰 점수차로 졌다(5대 13 한화 패). 한 선배가 “훨씬 빨리 끝날 경기였는데 태균이 홈런 덕분에 연장 가서 힘들게 졌다”고 했다(웃음).

그 경기 이후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찼다. 반면 원래 주전이던 강석천(현 두산 코치)의 출전 시간은 줄어들었다.

지금도 강석천 코치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장 멋진 선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강 코치님을 꼽을 거다. 3루에 있는 내게 언젠가부터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을 알려주셨다. 3루 수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통 유격수 출신 수비코치들이 잘 모르는 3루만의 특징 같은 것들을 며칠 동안 시간을 들여 가르쳐 주셨다. ‘선배님이 왜 그러실까’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배웠다. 그러다 얼마 지나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됐다.

왜였나?

선배님 은퇴 소식을 듣게 됐다.

아-.

그때 강 코치님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 코치님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감사한 마음에, 한화에서 코치와 선수로 다시 만났을 때도 코치님을 잘 따랐다. 다른 팀 가신 뒤엔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지만, 기회 될 때마다 한 번씩 연락드리고 안부를 여쭤봤다. 참 고마운 분이다.

한화 후배들에게 김태균은 틈만 나면 고기 사주고, 용품 선물하고, 야구 가르쳐 주는 최고의 선배로 알려졌다. 그런 것도 강석천 코치의 영향이라고 봐야 하나.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렇다고 봐야지. 코치님 보면서 어떤 게 진짜 선배의 도리인지 느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선수가 후배들에게 정말 잘 한다. 특히 우리 한화 고참 선수들은 다들 착해서 후배 아끼고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 같다.

“예전엔 지금처럼 전 경기 중계도 없었다. 후배들이 지금의 인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태균은 양 발을 타석에 찍어놓고 치는 특유의 타격폼으로 30년간 활약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엄청난 데뷔 시즌을 보낸 뒤 혹독한 2년 차 징크스를 겪었다. 2002시즌 105경기 타율 0.255 7홈런 34타점으로 성적이 뚝 떨어졌다. 뭐가 문제였나.

데뷔해엔 왼쪽 다리를 들고 쳤다. 원래 아마추어 시절엔 다리를 찍어놓고 때렸는데, 데뷔하고 경기하면서 뭔가 타이밍이 늦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리를 들고 쳐봤는데 운이 좋았는지 그때부터 잘 맞았다. 그래서 데뷔해엔 계속 레그킥으로 쳤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떤.

원래 내 폼이 아니잖나. 어려서부터 계속해온 폼이 아니다 보니, 시즌 끝나고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 하려는데 잘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10년 이상 유지해온 폼 아닌가. 10년 동안 레그킥으로 쳐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 몸이 기억하는 폼은 발을 붙여놓고 치는 폼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나만의 것을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 캠프가 지나갔다. 시즌 들어가선 원래대로 찍어놓고 치다 어떤 때는 다리를 들고 쳤다가, 2개 폼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즌을 치렀다. 그런 식으로 버텼다.

그럼 김태균만의 고유한 타격폼이 완전히 자리 잡은 건 언제쯤인가.

자리 잡았다고 하기 뭐한 게, 원래 지금의 이 폼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이랬다(웃음). 친구들이 “너는 어떻게 폼이 늘 한결같냐”고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한 폼으로만 시즌을 보내기가 어렵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아도 나만의 변화를 계속 준다. 한 시즌 꾸준히 잘하려면 최소 3개 이상 자기만의 타이밍과 루틴, 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틀은 유지하면서 순간순간 조금씩 변화를 줘왔다고 보면 된다.

‘제2의 장종훈’이란 수식어와 사람들의 기대도 큰 부담이었을지 싶다.

부담이 됐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는데, 사실 그때는 어린 나이라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때를 돌아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야구만 했던 것 같다. 잘하면 잘한 거고, 못해도 본전이라는 마음이었다. ‘제2의 장종훈’이란 말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편하게 한 거지.

야구 잘하는 선수들은 확실히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얘기한다. “너 나이 때는 잘하면 좋은 거고, 못해도 본전이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나이가 최고의 무기니까 못했다고 고개 숙일 필요 없다”고,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고.

강석천 선배를 이겨내고 3루수 자리를 차지했고, 장종훈 선배를 극복하고 4번타자 자리를 꿰찼다. 몇 해 전부터 인터뷰 때마다 “우리 팀 후배들이 실력으로 나를 밀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던 게 생각난다.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세대교체는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선배들이 버티면서 이뤄지는 게 아닐까. 굳이 누굴 밀어주고 배제할 필요는 없다. 밀어주지 않아도 될 놈은 되는 거고, 밀어줘도 안 될 놈은 안 되더라(웃음).

한화 이글스 성적이 좋았던 시절의 김태균(사진=한화)
한국야구의 암흑기와 황금기를 모두 경험한 선수다.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한국프로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정말 그렇다. 데뷔 초만 해도 관중석에 팬이 별로 없었다.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부터 프로야구를 향한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그런가. 올림픽 때부터 야구 보기 시작한 분들 중엔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는 분이 꽤 있다(웃음).


그 시절 각종 별명과 ‘짤방’을 양산하며 프로야구 인기몰이에 큰 공을 세웠는데.

아마 요즘 후배들은 잘 모를 거다. 야구가 정말 인기 없던 시절, 암흑기 때 어땠는지 상상도 못 할 거다. 지금처럼 전 경기 중계가 어딨나. 그때는 2경기 정도만 중계방송했고, 중계 없는 날도 많았다. 후배들이 지금의 인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편]

논두렁 연습장, 옥상 배팅장…아버지의 열성이 김태균을 키웠다 [엠스플 레전드]에 이어파워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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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가수 겸 화가 솔비가 음악 방송 MC로 활약하던 신인 시절, 바쁜 스케줄에 지쳐 돌발행동을 했던 비화를 공개한다. 솔비는 성형외과를 찾아 상담부터 수술까지 돌발적으로 진행해, 부기가 채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방송 MC로 출격했던 흑역사를 소환한다.

13일 밤 10시 20분 방송 예정인 MBC '라디오스타'는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전현직 음악 방송 MC 4인방 솔비, 방송인 손범수, 가수 전진, 그룹 SF9 멤버 찬희와 함께하는 '가요 MC 톱텐' 특집으로 꾸며진다.

가수 겸 화가로 슬기로운 이중생활 중인 솔비는 신인 시절 MBC '쇼! 음악중심' MC로 활약했다. 솔비는 매주 음악 방송 생방송을 비롯해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돌발 행동으로 흑역사를 자체 생성했던 비화를 고백해 현장 모두를 놀라게 만든다. 반항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 성형외과를 찾아 상담 후 바로 수술까지 받았다는 것.

솔비는 "부은 상태에서 생방송을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자료 화면은 절대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고 해 웃음을 유발한다.

'가수 솔비' 대신 '작가 권지안'으로도 불리는 솔비는 "아직도 '작가님' 표현이 혼란스럽다. 엉뚱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도 참는다"며 입담을 과시한다. 또 MC 김구라가 전시회를 직접 방문해 준 찐 팬 인증 일화를 공개해 훈훈함을 안기더니, 김구라가 "지갑은 안 열 거야"라고 여운을 남기고 갔다고 밝혔다고 해 그 내막을 궁금하게 한다.

이 외에도 솔비는 지난 연말 SNS에 직접 만든 케이크를 공개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케이크 디자인 표절 논란'에 대해서도 직접 입을 열 예정이어서 본방송을 향한 기대감을 높인다.

'만능돌' SF9 찬희는 3년째 '쇼! 음악중심' MC로 활약 중이다. 찬희는 바빠도 "MC를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치며 '귀여운 야망캐' 면모를 뽐낸다. 특히 음방 MC로 새로운 시도를 하다 "호되게 혼났다"라며 열정 탓에 되레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뻔한 '야망캐'다운 에피소드를 공개해 미소를 자아낼 예정이다.

SF9 메인 댄서인 찬희는 자신을 연기돌로 확실하게 각인시킨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OST '위올라이'에 맞춰 준비한 퍼포먼스를 공개한다. 하늘하늘한 춤 선을 뽐내더니, 웅장해지는 음악에 걸맞게 박진감 넘치는 댄스 실력을 뽐내 시선을 강탈할 예정.

이를 지켜보던 아이돌 선배 전진은 "춤을 안 춘 지 오래됐다"라고 주저하며 무대로 향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도 못 말리는 열정을 뽐내며 '위올라이'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친다. 덕분에 뜻밖의 신, 구 아이돌 '댄싱 머신'들의 막간 댄스 대결이 펼쳐졌다고 해 기대감을 높인다.파워볼엔트리
아이즈 ize 글 박현민(칼럼니스트)






1인 2역도 아닌데, 한 작품에서 두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KBS 2TV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극본 윤경아, 연출 홍성구)에 출연중인 배우 정보석에 대한 이야기다. 극중 까칠한 JH그룹 대표 우정후 역을 맡고 있는 그는, 사고로 기억을 잃는 설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인물 '제임스'로 거듭난 바 있다. 극중 제임스는 우정후와 정반대로 매사에 친절하고 성실하고 따스한 인물이다.



극중 짠돌이 성향에 늘 제멋대로인 폭군 우정후는 아내 정민재(진경)와 이혼으로 갈라선지 오래. 아들 우재희(이장우)와도 남남처럼 지내는 관계다. 그럼에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두 사람을 힐난하고 혀를 차는 독불장군 캐릭터였던 탓에 드라마 초반 그를 싫어했던 시청자도 상당했다. 현실이라면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꼰대 사장' 우정후는, 몹시도 미운 캐릭터였음에 분명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답답한 일투성이가 된 '오! 삼광빌라!'를 따뜻하게 이끄는 인물로 거듭났다. 이는 기억을 잃었던 시점에 탄생(?)한 '부캐' 제임스 덕분이다. 귀여운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연신 해맑게 웃는 그를 극중 인물 대부분이 좋아했다.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기억상실에 걸린 우정후의 기억이 영영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이들이 생겨날 만큼 제임스를 지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국 기억을 되찾은 우정후가, 여전히 제임스로서의 성향을 스스로 간직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정후가 제임스로 변화한 모습 역시 많은 것을 시사했다. '꼰대 우정후'의 정반대 지점에 대치한 것처럼 보였던 '상냥한 제임스'가, 사실은 그의 젊은 시절 그의 본모습이었다는 것.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던 과정에서 어느새 모두가 피하는 꼰대가 됐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따듯한 감성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배우 정보석이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배우가 극과극 캐릭터를 소화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하지만 한 작품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연기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청자가 해당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극 자체를 해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정후와 제임스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정보석 배우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MBC '지붕 뚫고 하이킥'(2010)부터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7(2019)까지 꾸준하게 다져진 코믹 연기, SBS '자이언트'(2010)나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2018)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완성된 냉혈한 연기가 이번 '오! 삼광빌라!'에서는 한 인물에 깊게 스며들었다. 쉽지 않은 캐릭터를 소화한 덕분에 그는 최근 '2020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화면에 등장한 'KBS 제1회 연기대상 신인상'(1987)을 수상한 모습은 그의 연기 인생이 얼마나 오랜 시간 숙성됐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최근 우정후는 진정한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10일 방영된 '오! 삼광빌라'에서 재희와 맺어지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장서아(한보름)와 직접 술잔을 기울이며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진정성 있게 조언한 것. 이 모습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것과도 맞닿아, 그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인 전처 정민재와의 관계 회복을 짐작케 하기도 했다.



변화된 트렌드에 공명하듯 자극적인 작품들이 넘쳐나고, 독특한 상황이나 사건을 차용한 만화 같은 드라마가 즐비한 요즘이다. 그런 시기에도 조금 진부할 수 있지만 따뜻한 감성을 버무리고 누군가와 부대끼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오! 삼광빌라!' 같은 작품도 필요한 것 아닐까. 무려 30여 년을 넘게 배우의 길을 꾸준하고 우직하게 걸어온 정보석은 그러한 작품에 누구보다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매경닷컴 MK스포츠(美 휴스턴) 김재호 특파원

무기력한 패배 이후 하루가 지났다. 스티븐 사일러스 휴스턴 로켓츠 감독은 턴오버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사일러스는 12일(한국시간) 팀 훈련을 마친 뒤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전날 열린 LA레이커스와 홈경기를 되돌아봤다. 전날 휴스턴은 21개의 턴오버를 범하며 30실점을 헌납한 끝에 레이커스에 102-120으로 무기력하게 졌다.

하루 뒤 비디오 분석을 통해 경기 내용을 복기한 그는 "공의 움직임은 좋았다. 슈팅의 질도 좋았지만, 넣지 못했을뿐이다. 상대가 빠르게 다가오기에 빠른 결정을 내려야한다"며 경기 내용에 나쁜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휴스턴은 전날 레이커스를 상대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사진=ⓒAFPBBNews = News1

휴스턴은 전날 레이커스를 상대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사진=ⓒAFPBBNews = News1
이어 "문제는 턴오버다. 턴오버가 컸다"며 턴오버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턴오버와 이로 인한 역습 허용을 신경써야한다. 지난 경기보다는 적게 내줘야한다"며 턴오버와 이로 인한 역습 허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에릭 고든도 "레이커스같은 팀을 상대로 턴오버 20개를 하면 이길 수 없다"며 턴오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격적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비에서 시작해야한다. 수비가 되면, 반대로 공격에서 쉬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며 좋은 수비를 하는 것이 쉬운 공격으로 이어지고 턴오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휴스턴은 하루 뒤 열리는 레이커스와 홈경기에 브로딕 토마스(오른 발목 염좌) 크리스 클레몬스(왼아킬레스건 파열), 그리고 다누엘 하우스 주니어의 결장을 예고했다. 허리가 안좋아 최근 결장했던 그는 결장 사유가 "건강 및 안전 관련 지침"으로 변경됐다. 사일러스 감독은 추가 이탈자가 발생할 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답을 피했다. 왼다리 아래쪽이 안좋은 고든과 편두통이 있는 존 월은 출전이 의심스러운(Questionable) 상태로 분류됐다.

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는 모두에게 골치거리다. 일각에서 시즌 중단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로켓츠 선수노조 대표 P.J. 터커는 이에 대해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시기다. 리그 사무국의 전문가들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greatnem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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